성도들의 감사 / 시30:4-5 어릴 적 선생님의 아들이 참 부러웠습니다. 아버지가 선생님이니 감히 누가 건드리지 못하는 겁니다. 군대에서는 장군의 아들이 참 부러웠습니다. 드라마에서는 회장님의 자녀들이 부러운 존재입니다. 대저택의 대문이 열리면 잔디밭이 있고 넓은 정원에서 그 자녀들이 뛰어놀고, 거실로 들어서면 멋들어진 소파, 화려한 샹들리에...그들보다 정말 부러운 존재가 따로 있습니다. 그런 모든 좋은 조건들이 정말 부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저 재물은 영원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잠27:24) 그렇다면 정말 부러운 존재는 누구일까요? 첫째, 주의 성도됨이 감사입니다.(4절) 성도(하씨드)는 ‘헤쎄드’(자비)에서 파생된 말로 ‘하나님의 자비를 힘입는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자랑스러운 언약 백성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비(헤쎄드)를 구하며 그에 대한 응답으로 그 거룩한 성품과 능력을 삶의 현장에서 맛보는 이들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 약속받은 언약 공동체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시16:3) 둘째, 저녁에 울음, 아침에 기쁨도 감사입니다.(5절) 주의 성도라고 할지라도 우리 인생의 일상은 울음과 기쁨이 교차합니다. 때로는 슬픔이 찾아오고 때로는 기쁨이 찾아옵니다. 이것이 인생의 일상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 슬픔이나 기쁨도 괜찮은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받는 자들(하씨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사건보다 크신 분입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 결코 작은 분일 수 없습니다. 홍해 앞에서 쩔쩔매는 이들 앞에서 하나님은 홍해를 갈라놓으셨습니다. 딸의 죽음에 쩔쩔매는 회당장 야이로 앞에서 하나님은 죽은 딸을 살리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보는 죽음과 하나님께서 보시는 죽음은 같지 않습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셋째, 하나님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합니다.(4절)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나라가 위태로운 시절에 모진 모함과 고난을 이겨내고 끝내 나라를 지켜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애굽에서 노예로 압제당하던 자신들을 출애굽시켜 구원하신 사실을 기억하였습니다. 단순한 이름이 아닙니다. 잊을 수 없는 감사의 이름입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들(하씨드)에게 ‘여호와’의 이름은 어떻습니까?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해주신 자비로운 이름입니다. 그 이름을 기억하며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청양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의 성도(하씨드)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을 받는 자들입니다.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그 언약으로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고 지켜주실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약속대로 다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고난과 역경이 있을지라도 능히 승리할 것입니다. |